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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옥스퍼드대 출판사 선정 올해의 단어‘omnishambles(총체적 난국)’처럼 2014년의 대한민국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또 있을까? 그 수준과 내용만 달랐지, 언제나 분노와 낙담을 안겨주었던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만행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간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자긍심을 안겨주었던 문화계에서도 사건사고들이 연달았다. 그 중 대미를 장식한 것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향악단 대표의 직원들을 향한 폭언 파문. 특급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한 여성 리더의 무지막지한 언행과 적반하장 격의 대응 방식을 접한 뒤 복잡해진 머리 한 켠으로 오래 전에 감상했던 이스라엘 영화 <밴드 비지트-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이 떠올랐다.

 

어느 악단의 예기지 못한 조용한 방문                                                                                            

이스라엘 출신인 에란 콜리린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밴드 비지트-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The Band’s Visit)>2007년 개봉작으로 제 60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 도쿄국제영화제, 유럽영화제, 뮌헨 영화제 등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 받았으며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 선정한 외국어 영화 TOP 10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경찰악단이 이스라엘 한 소도시의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단지 특이한 설정의 유쾌한 영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이상으로 깊은 감정의 골이 남아있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외교적 관계를 알고 있다면 이 영화의 진가를 한발자국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경찰악단은 해체 위기에 놓여있다. 이스라엘의 지방 도시에 새로이 문을 여는 아랍문화원의 개관 축하 공연에 초청을 받은 이들은, 이번 공연을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의욕만 너무 앞선 탓이었을까, 이들은 막내 단원의 어이 없는 실수로 사막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위치한 엉뚱한 마을에 도착하고 만다. 자신들이 타고 온 버스가 내일이 되어서야 다시 돌아오며 설상가상으로 수중에 이집트 돈밖에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멘붕에 빠진 이들을 동네 레스토랑 주인인디나가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설프게 시작한 소통, 음악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다                                                                          

이 영화의 강점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이라는 큰 갈등 구조 안에서 경찰악단이 처한 절망적 상황, 그리고 이스라엘 소도시 사람들의 무료한, 그러나 나름의 고민과 무게가 있는 삶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두 나라의 상황에 대한 정치적 표현이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등장인물들 간의 소통을 유쾌하게 다룬 감독의 감각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악단의 멤버들은 디나의 도움으로 둘씩, 셋씩 흩어져 마을 주민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애매한 상황에 놓인 등장인물들은 어설픈 영어로 말문을 열었지만 어색함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로 감독이 선택한 것은 결국 음악이었다. 문제의 막내 단원 할레드가 순수한 마을 청년 파피에게 연애 비법을 전수하며 부르는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 손님들 앞에서 부부끼리 다투는 애매한 식사 시간, 한 단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마일스 데이비스의 ‘Summer Time’ 같은 유명 재즈곡들은 물론이고, 고리타분한 단장 투픽과 자유분방한 디나의 데이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아랍 음악들은 영화의 매 장면에서 다른 세상에 속해 있던 사람들의 소통을 완성시키는 마법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 다른 단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시몬이 어느 마을청년의 집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는 자신의 협주곡을 들려주며 여러 이유들로 마지막 부분의 완성이 어렵다는 고민을 토로한다. 그런 시몬에게 그가 던지는 한마디가 이 영화 최고의 대사다. “그냥 그렇게 끝나도 괜찮지 않나요?”

 

소통의 기본 조건: 편견을 버릴 것                                                                                                

악단 멤버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의 진솔한, 그러나 과하지 않은 하룻밤 동안의 소통을 보며 그 교향악단 대표가 간과한 소통의 기본 조건을 곱씹어본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것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무지는 편견보다 진실에 가깝다.”는 말을 남겼다. 얕은 지식에 갇혀서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진솔한 소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저해 요소다. 자신의 경험과 인맥에 기대어 누군가를 나쁜 사람이라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 대표적인 불통이다. 심지어 그 누군가가 나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존경 받는 임금들 중 하나인 정조가 반대파의 수장으로 자신에 대한 독살 시도의 배후 인물로까지 의심 받았던 심환지와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리더 불통 시대: 소통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때                                                                          

대한민국의 차세대 리더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설문에서 10년 뒤 한국의 리더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소통 능력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의미심장하게도 현재의 리더들에게 가장 부족한 능력으로 꼽힌 것도 바로 이 소통 능력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리더들의 불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겉으로는 소통의 탈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견고한 성벽 안제왕적 리더의 속모습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기업들이 소통의 기업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두가지 제도가 있다. 하나는 회장님과의 대화’,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수평적 호징제. 그러나 소통은 계급장을 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또 자주 만나는 것이 원활한 소통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진짜 소통은 단 하룻밤을 보내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것, 그냥 그렇게 끝나도 괜찮다는 이야기 속에서 시작한다. 우리 정부의 소통 정책, 또 우리 기업들의 소통 경영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소통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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