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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그러니깐 8월 22일에 공식적으로 세 딸의 아빠가 되었다. 제왕절개수술의 묘미 중 하나는 출산일 선정이 가능하다는 점인데 이 날은 내가 (행정적으로) 박사 학위 소지자가 된 날이기도 하다. 유치하지만 일부러 두 날짜를 맞춘 셈이다. 세월이 흘러 내 삶의 이 지점을 돌아볼 때 웃음이 나길 바랐다. 작년 겨울부터 올 여름까지 크고 작은 고난이 나를 물고 늘어졌다. 누구도 아닌 내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어 더 힘들었다. 아이의 탄생은 아빠의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다른 아빠들의 삶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내 삶에 있어서는 분명한 진리이다. 내 삶이 어두컴컴한 터널 속을 지나고 있을 때마다 딸들은 내 앞에 구원자처럼 나타나 주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그리고 말로만 전해 듣던 복덩이었다. 멀게 바라보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난 웃음이 난다. 


지나는 2.8 킬로그램으로 각각 3.9, 3,4 킬로그램이었던 언니들보다 작게 태어났다. 엄마 뱃 속에서 갓 나온 지나는 정말 작아서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하얀 태지에 둘러쌓인 붉은색 핏덩어리. 세번째 경험이지만 눈으로 보고 사진을 찍어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약간 더 특별하다. 아빠인 나는 약간은 속상하고 허무하기도 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엄마는 아이를 열 달 동안 온 몸으로 품고 있었고 게다가 탯줄이라는 운명의 끈으로 묶여 있었으니 이미 불공평한 게임인 셈이다. 내 경험 상으로 아빠가 아이와 깊은 유대감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서부터다. 신생아가 제대로 시야의 초첨을 맞출 수 있는 시기를 약 3개월이 지난 이후라고 보면 그 전까지는 소중한 인형을 다루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100일이 지나면 끔찍한 내 핏줄이 되지만.       


아빠와 잠시 헤어질 찰나, 울음을 터뜨리는 지나를 보고 있으니 벌써 아빠를 느끼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분만실의 자동문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처럼 느껴졌다. 이제 나는 현실로 발을 내딛었다. 갓난 아기를 키우는 일이 육체적으로 정말 힘든걸 알고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물론 고생은 아내가 몇 배로 더 하겠지만.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아이를 통해 얻는 기쁨과 행복은 비할 데가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결혼은 Sweet Hell, 육아는 Happy War!


이제 행복한 전쟁을 준비할 시간이다. 뽀송뽀송한 지나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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