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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들

라면 상무에 대한 단상

Sunghan Ryu 2013. 4. 24. 01:25

지난주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모 대기업의 임원이 운항 중인 기내에서 승무원들에게 진상을 피우다 급기야 손에 든 책의 모서리로 한 승무원의 눈두덩이를 가격한 것이다. 절망적인 것은 이 모든 진상의 발로가 퍽퍽한 쌀밥과 설익고 짠 라면에 대한 그 임원의 분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후에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각종 기사들을 통해 공공연하게 밝혀졌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일단, 긍정적 마인드를 십분 발휘하여 이 사건의 유익함을 집어본다면, 1) 기내에서 컵라면을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완전 공개되어 향후 국내 라면 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 2) 해당 기종에서 라면이 설익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소개되면서 국민들의 과학 상식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점, 3) 짠 음식을 통한 나트륨 과다 섭취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했다는 점 등이다. (승무원의 눈두덩이를 가격한 책이 저염 식단을 소개하는 요리책일지도 모를 일이다.)


위 3개의 유익함을 제외하고는 이 사건과 그 가해자는 정말 거지 같다. 아니, 이런 사건이 표면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비루함이 진심으로 거지 같다. 한국의 모든 사회 관계를 구분 짓는 두 단어, 갑과 을. 그리고 갑은 슈퍼갑이 되고 을은 병정으로 추락하는 이 몹쓸 시대는 돈을 신분증삼아 새로운 계급 사회에 접어들었다.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어떤 요구도 할 수 있고 어떤 불만도 표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슈퍼갑' 마인드의 사람들이 나대는 세상이다. 


무례함은 내가 가장 눈에 담기 싫은 광경이다. 특히 내가 이를 앙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게 만드는 것은 상대적 우위에 있는 자가 약자를 대할 때 드러나는 비릿한 무례함이다. 정말이지 인간에 대한 회의가 몰려오는 순간이다. 여러가지 상황적 요인으로 자신에게 최선의 응대를 제공할 수 밖에 없는 상대방의 위치를 악용하는 것은 정말 비열하고 더러운 짓이다.     


이러한 수직적 상하 관계가 지배적인 한국의 사회구조에서 상하 관계가 불명확한 '애매한' 상황을 꼰대들은 도무지 견뎌낼 수가 없다. 그래서 손쉬운 기준으로 돈의 흐름, 즉 누가 돈을 지불하는가를 상하 관계의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내가 지불하는 돈으로 너가 먹고 사니, 너는 내 명령에 따라야 해."


얼마나 비루한 기준 적용인가. 더 큰 문제는 온 사회에 이 비루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로 한국의 서비스 산업, 그리고 한국 사회의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돈의 흐름을 기준으로 새롭게 형성된 신 계급사회에서 파트너십과 공동체성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비스의 수혜자와 제공자가 주종 관계가 아닌 상호 계약 하의 파트너라는 인식, 다양한 서비스 제공자들의 노력과 투자를 통해 이 사회가 구성되고 유지, 발전되고 있음을 이해하는 공동체적 믿음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 없이는 사회적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새로운 계급 간의 격차가 심화될 뿐이다. 환경미화원들과 마트의 점원들에게 손가락질 하며 공부를 못하면 저렇게 된다고 닥달하는 비인격적 세뇌가 아닌,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헌신을 통해 우리가 많은 혜택을 얻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인격적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가 모든 서비스에 지불하는 돈의 대가가 제공 받는 서비스 자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기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포함하고 있는 것임을 교육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사회가 한 몸과 같음을 깨닫는 것이다. 손이 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서로가 지니고 있는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몸의 한 부분이 아프기 시작하면 곧 온 몸이 고통 받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회가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깨끗하게 돌보는 것은 물론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와 정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많이 약하고 쉽게 다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앞으로 더 건강하고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며 라면 상무의 회심과 앞으로 펼쳐질 우리 사회를 향한 그의 헌신을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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