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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경영대학 웹진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본문은 여기에서 확인하세요.]





1839년, 프랑스 서부의 항구도시의 낭트에 살던 열살 남짓의 빼빼 마른 소년은 흠모하는 동갑내기 사촌 누이에게 산호 목걸이를 선물하기 위해 인도행 원양선에 몸을 실었다가 ‘다행히도’ 아버지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엄한 꾸지람을 들은 뒤, 그 소년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약속했지요.

“앞으로는 상상 속에서만 여행하겠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현대 SF의 아버지’라 불리는 쥘 베른 (Jules Gabriel Verne, 1828 - 1905)입니다.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등 ‘상상’과 ‘과학’이라는 재료에 ‘모험’이라는 소스를 버무린 전설적인 작품들을 선사한 작가의 어린시절 에피소드로서 손색이 없지요.  


법학을 공부하던 파리 유학 시절, 문학 살롱을 드나들며 <삼총사>의 알렉상드르 뒤마 등과 교류하던 그는 공부를 마친 뒤 고향으로 돌아가 법관의 길을 걷는 대신 파리에 남아 작가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꿈을 선택한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어두컴컴한 긴 터널에서의 10년이었습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무명작가의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전도유망한 출판업자였던 피에르 쥘 에첼 (Pierre-Jules Hetzel, 1814-1886).


에첼은 책을 통한 계몽, 그 중에서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의 대중화에 큰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동용 잡지 <교육과 오락>을 창간할 계획을 세우고 집필자를 찾고 있던 중에 베른의 습작인 <기구를 타고 5주간>를 접하게 됩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는 데에 꼭 필요한 재능을 발견한 에첼은 장기계약을 제안하게 되고 에첼의 의견에 따라 수정된 <기구를 타고 5주간>은 1863년 출판되자마자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지요. (기존 습작에는 재미 요소가 부족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이후 베른은 에첼의 지원으로 자신의 재능을 한껏 발휘하며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교육과 오락>을 포함한 잡지나 신문에 연재된 뒤 에첼의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고 다시 삽화를 넣은 선물용 호화장정본으로 재출간되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그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특히 ‘경이의 여행-알려져 있는 세계와 알려지지 않은 세계’ 시리즈는 물리학, 지질학, 지리학, 천문학, 동물학, 식물학, 고생물학 등의 많은 지식과 정보를 포함한 과학적 특성과 베른의 타고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에 기반한 공상적 특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그 특징인데요, 몇년 전부터 화두가 되고 있는 에듀테인먼트(Education+Entertainment)의 시초인 셈입니다. (베른이 작품을 연재한 잡지의 이름을 다들 기억하시나요?)


에듀테인먼트는 오락과 교육의 중간 산물이라기보다는 오락을 즐기는 과정에서 스스로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고안된 새로운 콘텐츠로 보는 것이 적합합니다. 기업들이 마케팅활동이나 직원교육 등에 이를 활용하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최근에는 에듀테인먼트 개념을 확장, 제품과 서비스에 도전, 경쟁, 포상 등의 게임 요소를 적용해 고객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게임화) 마케팅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콘텐츠에 어설프게 오락적 요소만 투입한다고 해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어지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지요.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양질의 재료’와 ‘자연스러움’입니다. 전하고자 하는 지식과 정보가 새롭고 가치가 있어야 함은 물론 고객들이 어려워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진행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쥘 베른 작품의 위대함이지요.    


그가 예언자적으로 제시했던 로케트, 잠수함, 비행기 등이 오랜 시간이 흘러 실제로 발명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소설 속 ‘양질의 재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티러스호가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잠수함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더 재미있는 사실은 1968년 인류 최초로 달을 돌고 돌아온 아폴로 8호의 선장 프랭크 보먼이 쥘 베른의 손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납니다.


"우리의 우주선은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세계 여행>의 주인공) 바비케인의 우주선과 마찬가지로 플로리다에서 발사되어… 태평양에서의 착수 지점은 소설에서 나온 곳에서 겨우 4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또한 쥘 베른의 작품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순서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것은 그의 작품 속 ‘자연스러움’을 증명합니다.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 또는 미래기술을 가르치려 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세계 최초로 북극 횡단 비행에 성공한 리처드 버드를 비롯, 그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수없이 많은 탐험가와 과학자들이 바로 그 대답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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