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방정식>, 미디어 = 삶

미디어는 실제 삶과 동일하다, 라는 미디어 방정식을 제시하며 미디어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즉 사회적이며 자연적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들과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와 실험들을 소개하는 이 책은 아이디어의 시작에서부터 실험의 설계, 실행 그리고 인사이트(insight)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디어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논의는 이전부터 있어왔고, 특별히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관련해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라는 하나의 분야가 개척되고 안전하게 정착되었을 만큼 그 중요도가 점점 더 확대되어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분야의 논의들은 어떤 미디어 디자인이 인간에게 편의성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다분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시작되었고,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들은 컴퓨터를 포함한 미디어와 관련된 인간의 사고와 행위, 그리고 그에 따른 미디어의 물리적인 디자인에 그 초점이 집중되어 왔다. 이러한 주류적인 시각을 뛰어넘어 미디어 자체에게 ‘인격적인’ 무엇인가를 제공하고 그에 따라 미디어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논의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미디어에 성격과 성별을 부여한 부분이었다. 미디어에 일정한 방식으로 성격과 성별을 부여했을 때, 그 상호작용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 실제의 삶에서 인간이 각각의 성격과 성별을 지닌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할 때 양상이 달라지는 것과 유사하다는 가설을 증명한 것이었는데, 이 연구를 통해 다양한 임플리케이션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어떠한 미디어를 디자인할 때, 그 미디어와 상호작용을 하게 될 대상에 따라서 그 미디어에게 일정한 성격과 성별을 부여하거나, 혹은 사용자가 직접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미디어를 통한 효과가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생각해 보았다. 예를 들어, 교육용 게임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게임의 대상이 되는 유저나, 게임의 컨텐츠(스토리와 교육내용)를 고려해서 게임의 구성방식이나 진행방식 등에 변화를 준다면 게임의 효과성이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생각은 ‘인공지능’의 개발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형태는 ‘스스로 학습하고 추리, 적응, 논증의 기능을 하는 컴퓨터’라고 한다. 하지만 미디어 방정식의 논의에 따르자면 그 형태는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고유의 성격(캐릭터)을 가진 컴퓨터 혹은 로봇이 되지 않을까?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사회적, 자연적으로 성장(혹은 사회화)하는 것처럼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과 미디어가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전하는 시대가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부작용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신은 그 부작용마저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어디엔가 숨겨놓고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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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이해>, 미디어 = 메시지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명제는 일견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지만 그의 주장이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는 어떻게 메시지가 되는 것인가? 맥루한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은 결국 인간의 기관 및 기능의 확장을 이끌어 내는 것이고 이 확장이 인간의 사고 및 인지의 변화를 시작으로 사회적, 문화적 변동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 중에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그 중요도가 매우 높은데, 이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인간 감각 기관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변화 혹은 발전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메시지-미디어는 메시지다-는 디지털 미디어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져가는 이 세상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책의 서문에서 루이스 래펌(Lewis Lapham)이 “처음 발간된 1964년보다는 1994년에 훨씬 큰 호소력을 가진다.”라고 평했던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미디어는 인간 감각 기관을 혁신적으로 확대시켰다. 사람들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이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기술의 발전으로 냄새를 맡고, (감촉을) 느끼는 단계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손쉬운 예를 들자면,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우리는 우리의 시공간 감각이 이전에 비해 더욱더 확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사적인 공간들을 다른 사람들이 웹상에 올려놓은 사진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디지털) 콘텐츠 자체의 발전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의 설득력을 강화시키는가, 에 대한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콘텐츠는 의미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그 안에 미디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 때문에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가 더욱더 강화되는 동시에 오히려 희석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강화와 희석 사이-은 궁극적으로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구분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웹(인터넷)은 맥루한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 웹은 모든 미디어의 통합임과 동시에 또다른 새로운 미디어이기도 하며 뜨거운(Hot) 성향과 차가운(Cool)한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알쏭달쏭한 미디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웹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한의 명제에 가장 적합한 미디어라는 사실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웹을 통해 우리의 감각 능력이 거의 무한대로 확장되었으며, 그 확장된 감각 기관을 통해 우리는 무지막지한 메시지, 즉 콘텐츠를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맥루한이 아마 생전에 미디어로서의 웹을 경험했더라면 미디어 그 자체가 메시지라는 그 명제에 더 강한 확신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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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 그리고 새로운 세계

소유의 시대를 뛰어넘어 등장한 접속의 시대를 이야기는 제러미 리프킨의 책, 소유의 종말(원제 The Age of Access). 접속의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개념과 이 패러다임이 사회의 각 영역에 몰고 오는 변화의 바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비책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저자의 원맨쇼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책이다. 각 부분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나의 지성과 감성의 반응에 대해 먼저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1부 자본주의의 프론티어』에서는 내가 줄을 제대로 섰다는 것에 대한 흥분과 희열로 책의 내용이 어떠한 반작용도 없이 쉽게 이해되었으며,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에서는 편협한 시야로 문화산업을 바라보았던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문화산업을 향한 타오르는 사명감을 고취할 수 있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1부에서 저자가 하는 이야기들의 ‘당연함’에 대해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2부의 내용들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가 문화산업에 투신하기로 결심했을 때의 내 초심이었다. 학부 시절, 경영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남들이 선택하는 컨설팅이나 금융권에 대한 사심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것들에 미련을 쉽게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문화‘의 힘에 대한 강한 신뢰감 때문이었다. 책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문화는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임과 동시에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화가 상업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처럼 내가 ’문화’를 그리고 ‘문화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질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문화를 상품화하면 대박이 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문화산업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을까?’와 같은 자본주의적, 상업적 시각과 발상으로 문화의 존재를 오염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문화 자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은 이러한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위의 반성과 더불어, 무엇 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부분은 책 마지막 파트에 언급되는, 문화를 고갈시키는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제러미 리프킨의 비책 부분이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상업적)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기업과 정부를 제외한 제 3 부문이 제 역할을 감당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 사회적 신뢰의 구축해야 할 것,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 교육을 더욱더 강화할 것 등을 설파했다. 어떻게 보면 다분히 뜬구름 잡는 소리라 말할 수 있겠지만, 방향을 제시해주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덮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경영학도인 내가 문화산업을 선택했던 또 다른 이유가 문득 떠올랐다. 그것은 문화산업이 부의 재분배를 위한 가장 최적의 모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체험)는 다른 상품들의 그것들과 달리 평등한 구조와 프로세스를 가지게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물론, 현재의 상태는 충분한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어떤 공동체든 그들만의 문화(상품)를 가지고 있을테니 말이다. 결국, 이 접속의 시대에 제 3 세계의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운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는 바로 그들의 ‘문화’다. 그리고 바로 그 접속 지점에서 우리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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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기질>, 아이다움을 찾아서.

아이다움을 회복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질을 회복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 류성한

처음 열정과 기질이라는 한글판 제목을 접했을 때에는 성공을 결정하는 요소는 선천적(기질)인가 혹은 후천적(열정)인가, 라는 뻔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내용의 책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결론적으로 둘 모두가 중요하다, 라는 싱거운 결론을 내리고 말겠지, 라고 무시하던 참이었다. 얼마 전에 책을 구하고 Creating minds 라는 영문 제목을 접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 책이 창조성과 관련된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창조성에 평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이 책은 나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인상을 주었는데, 하나는 책의 내용(주제)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내용에 관해서 말하자면, 창조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교육적’ 내용이 아닌 ‘분석적’ 내용을 다뤘다는 사실이 일차적으로 인상 깊었고 책 내용의 전반에 흐르는 ‘창조성의 종류가 단일하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라는 저자의 창조성에 대한 기본 인식이 이차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창조성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었다. 책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기존의 전통적인 두가지 접근 방식이었던 특이성 중심적(idiographic) 방법과 공통성 중심적 (nomothetic) 방법을 종합해서 사용한 것인데, 다양한 분야에서 극단의 창조성을 발휘한 인문들에게서 공통적인 무엇인가를 뽑아내려고 한 시도가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물론,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허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고 무엇인가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냈다는 사실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무엇보다 관심 있게 본 부분은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이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고 7인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아마도 저자가 생각하기에도 강조점은 어른의 원숙함보다는 아이다운 천진성에 있는 것 같다. 어른의 원숙함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지만, 반대로 아이다운 천진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그 누구도 고리타분하거나 인습에 얽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창조적인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바라보는 창조성에 대한 시각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 열정과 기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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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창조 계급>, 창조는 아무나 하나?

창조적 경제와 창조적 계급

창조성이라는 키워드가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창조적 경제와 창조적 계급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지만, 막상 창조적 경제가 무엇인지, 혹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창조적 계급에 속하는 것인지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책을 읽은 뒤, 나의 언어로 정리를 하자면 창조적 경제라는 것은 창조적 계급이 중심이 되어서 이끌어가는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창조적 계급이라는 것은 (기술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가치를 생산해 내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나름 문화산업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오직 이 분야의 사람들만이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오해와 편견에 빠져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창조성이라는 개념, 그리고 창조적 계급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창조성과 지역

창조성의 새로운 경제적 지리와 그것이 경제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열쇠는 소위 경제 발전의 3T (기술, 인재, 관용)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이전 특강 시간에 미리 접한 개념이긴 하지만 책에서 자세하게 접근한 내용을 읽어보니 더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다양성으로 대변되는 관용에 대한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 창조적인 도시를 완성하는 최후의 조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미국과 똑같은 기준을 두고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야 안 되겠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기술과 인재에 비해서 관용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곰곰하게 생각해보자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교육일 것이다. 다름 혹은 다양함에 대해서 가르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서 가르치는 우리의 교육이 개혁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의 창조적 계급의 급진적인 확대나 창조도시의 정착은 유원한 미래의 일이 되지 않을까?

창조적 중심지로서의 대학

학부 시절에는 어떠한 치열한 고민도 없었다가 막상 대학원에 들어와서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식을 창조하는 공동체라고들 이야기는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해외의 선진학문들을 교육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선진 학문이라는 것도 겸손함이라기보다는 굴욕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으며, 교육이라는 표현도 허울일 뿐, 답습이나 복제라는 수식이 더욱더 어울릴 듯 하다. 대학(원)은 창조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 즉 창조적 계급을 양성하는 곳이어야 한다. 대학(원)이 그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학문의 구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학제적인 접근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창조성은 다양한 경험과 시각으로 풍부해진 지능에 의해 장려된다.” 라는 키스 시몬톤의 말처럼 학제적 접근을 통한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통해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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