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단상

오늘 저녁, 대학원 동기 커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너무나 멋진 장소와 잘 어울리는 신랑과 신부, 감미로운 축가와 맛있는 음식 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예식이었다. 피로연이 진행되던 중 옆에 앉은 동생과 회사 다니랴, 아기 보랴 정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내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무리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내뱉었다. “못난 남편 만나서 고생하는거지, 머” 둘이서 겸연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데 옆에 앉아계시던 친한 교수님께서 나의 말을 듣고서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장난으로라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 는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셨다. 그 때에는 알겠다며 웃어 넘겼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 상황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글로서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컴퓨터를 켰다.

오늘 예식의 주례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3가지 이벤트 (탄생, 결혼, 죽음) 중에서 오직 결혼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결혼은 선택이다. 나는 누군가는 하지 않은 선택을 했고 그 결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새생명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었다. 물론 알차게 쓰던 자유시간이 많이 줄어들었고,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곱절 이상으로 늘어나 가끔씩은 뒷골이 땡기기도 하고, 딸아이를 재우느라 잠 못 이루는 밤도 늘었다. 휴일이 되면 연애 시절의 데이트는 이제 더이상 꿈도 꾸지 못하고 집안에서 하루 세끼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의 선택은 현실이 되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그렇게 결혼을 일찍 했어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즐겨하는 대답이 있다. “너무 좋아서요!” 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약간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아무도 그것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달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니깐 결혼한다는 것을. 다만 이 뒤집어진 세상에서  무언가가 약간 뒤틀려 있을 뿐이다. 조건, 조건, 조건.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머,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을 달지 않겠다. 쓰자면 밑도 끝도 없이 기분만 상할테니깐.

성경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믿음과 소망, 이 멋지고 순결한 단어들보다 흔하디 흔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부부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답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부부 간의 믿음? 이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리라 믿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기대는 높아지고 조그마한 실수 하나에도 서운한 마음이 눈 굴러가듯 불어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나를 책임지리라 믿기 시작하는 순간,  책임질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부부 간의 소망? 이 사람이 언젠가는 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변하지 않는 상대방의 모습에 실망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잘 대해줄 거라는 소망을 갖게되는 순간, 상대방의 작은 무관심에도 배신감을 느끼기 시 작할 것이다. 결국 서로가 만나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다. 다른 어떤 믿음이 필요하지 않으며 다른 어떤 소망도 가질 필요가 없다.

방금 전까지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설명할 수 없었던 불편함들이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한 저 어리석은 발언은 ‘선택’으로서의 결혼에 대한 의미를 뭉개버린 셈이며, 즉 아내의 선택을 그 근본 뿌리부터 뽑아 흔들어 버린 셈이다. 또 하나는 아내의 ‘사랑’을 ‘믿음’과 ‘소망’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자격지심으로 스스로를 믿음과 소망의 허울 좋은 철장에 가두어버린 셈이다. 나는,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글을 정리해보자. 결혼은 선택이고 그 선택은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 선택 후에 찾아오는 모든 문제들과 어려움들은 단 하나로 해결 가능한데 그것 또한 사랑이다. 따라서 결혼은 사랑의 결실임과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사랑으로의 진입을 안내하는 깃발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결혼하고 싶은 자?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은 자? 결혼하라!

칭찬의 기술, “SUPER” 칭찬법을 소개합니다.

지난밤, 칭찬의 기가 막힌 능력을 체험하고 난 뒤, 칭찬이 우리들의 삶에, 그리고 관계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칭찬 듣기를 밥 먹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것은 내가 그 누구보다 칭찬을 통한 ‘자기 확신’을 여러번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 보잘 것 없고 부족한 나이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의 진실된 격려와 응원으로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과연 어떻게 칭찬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물론, 모든 칭찬은 좋은 것이다. 비록 그것이 거짓이거나 과장일지라도!) 나의 작은 제안이 칭찬에 어려움을 느껴 괜히 툴툴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칭찬에 너무나 목말라 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소한 위로를 전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제안하는 칭찬의 기술은 “최고급의, 훌륭한”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영단어 SUPER로 요약된다. 즉, 최고의 (Super)의 칭찬은 구체적 (Specific)이어야 하고 개성적 (Unique)이어야 하며 지속적 (Persistent)이어야 하고 감성적 (Emotional)이어야 하며 즉시 (Real-time) 이루어져야 한다. 각각의 법칙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 칭찬은 구체적(Specific)이어야 한다.

칭찬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아마도 이 ‘구체성’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도 많은 ‘두리뭉실한’ 칭찬들을 접하게 되는데 칭찬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이 덜 동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두리뭉실함’ 때문이다. 이런 류의 칭찬은 칭찬을 하는 사람의 진심이 전달되기 어렵고, 몇몇 경우에는 진심이 호도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이 프리젠테이션을 멋지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프리젠테이션 좋았어!”, “프리젠테이션 너무 잘하더라!” 등의 칭찬을 선사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 칭찬을 들은 사람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가벼운 인사치레 정도로 넘기기가 쉽상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칭찬을 들었다면 어떨까? “오늘 프리젠테이션할 때 자신감 있는 태도가 너무 멋졌어!”, “오늘 복장과 프리젠테이션 구성이 너무 잘 매치된 것 같아!” 분명히 여러분들은 자신의 프리젠테이션을 다시 떠올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칭찬을 할 때는 어떤 특수한 행동이나 요소에 집중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칭찬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작은 행동이나 요소 하나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식이다. 여러분들의 칭찬을 듣는 그 누군가는 분명히 여러분의 진심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 칭찬을 마음 속에 간직할 것이고 더 멋진 삶을 살아낼 것이다.

2. 칭찬은 개성적(Unique)이어야 한다.

위의 “두리뭉실한” 칭찬과 더불어 가장 지양해야 할 칭찬은 바로 “뻔한” 칭찬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고 그 자신마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끄집어 내어 반복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칭찬을 하는 것이 칭찬을 하지 않은 것보다는 100배 이상으로 낫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나의 외모에 대해 칭찬 하는 것은 사실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살아오면서 외모에 대한 칭찬은 너무 많이 받아왔을 뿐더러 스스로도 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진담으로 받아들이실 뿐만 진담으로 받아들이시길…) 반면에,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의 장점을 누군가가 발견해서 칭찬해 준다면 어떨까? 또 상투적인 어구로 점철된 칭찬이 아니라 멋진 비유와 표현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칭찬이라면? 내가 받은 가장 개성적인 칭찬은 “밭에서 쑥~ 뽑아낸 싱싱한 무” 같다는 칭찬이다. (나는 지금 이 칭찬을 해 준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요새는 가끔씩 깍두기가 되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물론 스스로도 못 찾는 장점을 찾는다는 것이, 또 멋진 표현을 찾아낸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다 부담 가질 필요 절대 없다.  표현이 투박하고 서툴러도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깐.

3. 칭찬은 지속적(Persistent)이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칭찬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칭찬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확신’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밝힌대로 나 자신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받은 칭찬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 단기간 내에 형성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씨를 뿌린 다음, 바로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누군가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면, 여러분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그 사람의 장점을 키워주고 지켜봐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인생 자체를 책임 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 그  사람도 그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칭찬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회의에 빠진 그 누군가에게 그것을 극복하고 새 힘으로 힘차게 날아오르게 만드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4. 칭찬은 감성적(Emotional)이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을 크게 이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으로 구분해서 각 사람의 특성에 맞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들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나는, 칭찬의 경우에는 무조건 감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칭찬은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진심 어린 칭찬을 받았을 때 머리로 분석하지 않는다. (물론, 사회에서는 여러 타입의 정치적인 칭찬이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감동할 뿐이고 또 감동할 뿐이다. 따라서 칭찬을 할 때에는 자신의 감정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친구가 디자인한 포스터를 보고서 “포스터 진짜 멋지던데. 역시 실력 있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너가 디자인한 포스터를 보니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떨리고 흥분이 되더라.”라고 말하는 것이 칭찬을 받는 상대방에게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칭찬이라는 것은 칭찬을 주고 받는 두 사람간의 감성의 매개체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특히 남자의 경우, 이성으로부터 이런 감성적인 칭찬을 듣게 되면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게 되고 몹쓸 오해를 하기도 한다. (여성 분들을 이 부분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5. 칭찬은 즉시(Real-time) 이루어져야 한다.

“최고의” 칭찬법, 그 마지막 요소는 바로 즉시성이다. 이 요소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인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칭찬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별 생각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다 보면 임팩트가 큰 사건이 아닌 한 자신의 주위를 기울이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즉시성’은 가장 많은 관심과 주위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칭찬 받을 일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 곧바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를 원하지, 적당한 시간이 흘러 스스로 그 칭찬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늦게라도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좋은 “칭찬자”가 되고 싶다면 상대방의 좋은 부분을 발견했을 때, 즉시 그 부분을 칭찬할 수 있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필요가 있다. (신경을 곤두 세운다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들린다면, 까칠한 “이태리 타올안경”을 벗어버리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YES 안경”을 새롭게 장착하라는 충고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자신의 작은 기여에 상대방의 즉각적인 칭찬을 받은 사람은 그 순간을 영원히 강렬하게 기억할 것이다.

지금까지 “최고의” 칭찬을 할 수 있는 5가지 법칙에 대해서 소개를 했다.  그러나 이 5가지 법칙은 한낱 기교에 불과하다. 본문에서도 여러번 언급되었다시피,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그 칭찬 안에 담긴 진실된 마음이다. 이 세상에서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하며, 앞으로 남은 삶 동안 이 SUPER 칭찬법-5가지 칭찬의 법칙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우리, 칭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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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상에 따뜻한 불씨는 남아있는가?

지난밤에 월드비전에서 보내온 소식지를 한장, 한장 넘기면서 세상에는  아직 따뜻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구나, 혼자 슬며시 웃으며 내뱉었다. 온갖 세상의 더러운 것들과 부조리의 향연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리도 이기적인건지, 세상은 왜 이리도 무정한 것인지 아주 많이 화가 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선한 이웃들은 언제나 조용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쁜 악당들은 언제나 조용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나쁜 짓을 하고서는 활짝 열린 곳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쳐다보라고 외친 뒤에나 생색을 내고 있지만 말이다.

왜 세상은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는걸까? 먹고 살기에 충분한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왜 더 많이 가지지 못해서 안달이 난걸까? 충분히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왜 더 높이 오르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는걸까? 충분히 배가 부를 것 같은데도 왜 멈추지 못하고 꾸역꾸역 입에다 음식을 처넣는 걸까? 이것이 시스템의 문제인지, 인간 본성의 문제인지, 아님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거대한 세상이 점점 악취가 진동하는 똥통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위로부터 흘러내리는 온갖 배설물들이 줄기에 줄기를 이루어 땅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것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이것이 똥냄새인지 알아채리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이 똥같은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 세상에 따뜻한 불씨는 남아있는걸까? 위에서 내리는 배설물들을 활활 태워버리고 세상을 더욱더 살만하고 따뜻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불씨는 어디에 있을까? 스스로를 돌아본다. 옷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냄새나는 것들이 내 몸을 덮고 있다. 피할 수가 없었던 걸까, 아님 피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걸까? 체념하려던 순간 왼쪽 바지 주머니에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급하게 손을 넣어 꺼내어 보니 그것은 작은 성냥갑 하나. 떨어지는 배설물들을 피해 아직은 푸른빛을 발하고 있는 나무 한그루 밑으로 급하게 달려간다. 떨리는 손으로 성냥 한개비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비틀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꺼질듯이 흔들리다가 이내 중심을 잡고 빠알간 불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 누군가는 나와 같은 성냥을 들고, 누군가는 초를 들고, 누군가는 횃불을 들고서 나무 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작지만 큰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작은 불씨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리는 배설물들은 더 거세지기 시작했지만, 이제 곧 이 작은 불씨들이 모여 그것들을 태우기 시작할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며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1:16-17]

By Culture Designer

Special Exhibition “RELOAD”

카이스트 경영대학 SUPEX 경영관 2층에는 넓은 공간이 하나 있는데,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 곳은 Research & Art gallery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곳에서는  예술과 경영, 또는 예술과 연구의 만남이라는 모토로 1년에 6~7회 정도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는데 오늘은 2011년의 첫 전시회인 홍남기 작가의 <RELOAD> 오프닝 행사가 있었다. 매번 오프닝 행사에는 작가를 직접 모셔서 작품에 대한 설명도 듣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진다.

50년 전, 칼라시니코프라는 구 소련의 한 병사가 만든 AK-47 자동소총을 모티브로 한 이 전시회는 영화의  전쟁신들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한 작품들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는 AK-47 자동소총에 대해 소개한 전시회 팜플렛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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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칼라시니코프라 불리는 구 소련의 한 병사가 나치즘에 대항하기 위해 자동소총 한 정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오늘에 와서 그 병사가 만들어 냈던 AK-47 자동소총은 전 세계에 1억 정이나 보급되었으며 그 덕택에 게릴라전이 지구상에 난무하게 되었다. 50년 전 소련정부가 AK-47 자동소총을 소련 군대의 표준 소총으로 채택한 순간부터 최전선 전쟁터는 물론 텔러리즘이 끊이지 않는 후방을 막론하고 적을 사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AK-47 자동소총이 마침내 모든 분쟁지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인기 있는 도구가 되었다. 영화 람보 시리즈는 AK-47돌격소총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영화로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고, ‘AK=나쁜놈’으로 공식되어있다. 흑인들이 겉옷을 풀어헤치고 한 손에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폐차 직전의 소형 트럭을 타도 비포장 도로를 활주하는 모습을 TV나 영화 속에서 수없이 봐왔다. 분쟁지역에서는 이 칼라시니코프 소총이 우리 돈으로 1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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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전시회 오프닝 행사 및 작품 사진들이다.

인사 말씀 중이신 라비 쿠마르 학장님

(왼편의 영상은 <람보>와 <못말리는 람보>의 전쟁신을 재 구성한 것)

작품 설명 중이신 홍남기 작가님

(뒤의 영상은 영화 <블랙호크다운>의 전쟁신을 드로잉으로 재구성한 것)

홍남기 작가에게 칼라니시코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레바논의 작가가 그에게 선물한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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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家長)이 된다는 것

지난 몇 일 간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다. 아내가 중국 출장을 가 있는 동안 딸 아이의 모세기관지염이 악화되어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출장에서 돌아온 아내는 딸 아이의 간병을 하다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뒷차가 들이받는 바람에 그 후유증으로 아예 몸져 누워버리고 말았다. 나는 딸 아이 간병하랴 아내 상태 체크하랴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다행히 양가 가족들의 도움이 있어 폭풍같은 나흘이 지나갔고 딸 아이는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을 했고, 아내도 깨끗하게 낫지는 않았지만 거동을 할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가족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내 맡은 역할을 감당하고 나니, 이제서야 비로소 진정한 가장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새해가 되었으니 결혼한지는 햇수로 3년차가 되었는데, 이제서야 가장으로서의 자각을 하게되었으니,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easy going하고 있었는지 반증하게 된 셈이다.

학생 남편으로서 가정 경제를 내가 온전하게 책임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연하 남편으로서 많은 부분에 있어 아내에게 상당한 심적, 정신적 부담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온전히 경제력이나 언행 그 자체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이 된다는 것이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지민이에게 아침을 먹이고 다시 재운 뒤에 창밖으로 보이는 아차산을 바라보았다. 창 아래쪽으로는 수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 옆의 건물들도 시간이 흐르면 그 색이 바래지거나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저 산만은 언제나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도 저 산처럼 우리 가족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가장이 되자고 다짐했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그리고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가정을 이룬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와 걱정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유익이 내 삶에 흐르고 넘치고 있다. 작고 작은 깨달음들이 모여서 나를 더 멋진 남자, 더 멋진 남편, 더 멋진 아빠로 만들어 줄 것을 확신한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통한 가장 큰 깨달음!

가장은 절대로 아프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