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검은 외투를 입은 그대에게

우리 학교는 봄학기 개강이 일러 이미 한창 학기가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학기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방학의 끝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이들에게는 손에 땀이 맺힐 정도로 긴장되고 흥분되는 새로운 시작일테다. 바로, 대학 새내기들에 대한 이야기다.

점심을 햄버거로 때울 요량으로 경희대 앞에 있는 버거킹으로 향했다.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앞에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별 다른 생각없이 빈틈을 헤집고 들어가 내가 버거킹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베이컨더블치즈버거 세트를 시키고 빈자리에 앉았다. 원래의 습관대로 창밖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라, 그런데 창밖에도 검은색 외투를 입은 무리들이 이곳저곳에 출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우리나라가 국상이라도 치르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몹쓸, 그러나 약간은 희망적인 상상을 하며 슬며시 웃었다. 카운터에서 내 햄버거를 받아들고 다시 자리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검은 외투의 무리들은 바로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 새내기들이었다. 그렇게 확신을 하고 나니 왠지 씁쓸했다.

휘향찬란한 색감으로 표현해도 모자랄 젊음을 지니고 있을 그들이 검은색 외투라니! 물론 입은 옷이 그들의 전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를 설명할 수는 있으리라. 검은색 외투의 무리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꼭 우리나라 12년 교육의 획일화된 결과물인 것 같아 햄버거 맛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 검은색 외투의 무리들에게 우리 대학들은, 우리 사회는 장례식장 이상의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 화창한 봄날에 검은 외투를 입은 그네들에게 조심스럽게 몇가지 위안과 응원을 전하고 싶다.

첫째, 비전 ‘따위는’ 가지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지금 비전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꿈을 강요 당하고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이 패배자처럼 인식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 분위기에 절대로 휩쓸리지 말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선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낮은 자리에서라도 주위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삶의 방향으로 설정해라. 비전은 행복 다음에 올 때 더 아름답다.

둘째, 주말 정도는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보내라. 처음 주어진 자유에 자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해야 되는 일이 있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주중을 해야 되는 일로 보냈다면 주말 정도는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도록 해라. 이를 주말로 한정 짓는 것은 주어진 자유에 대해서 최소한의 책임감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책임감과 중압감에 억눌려 주말에도 공부와 일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산책을 하든, 운동을 하든, 독서를 하든, 영화를 보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날이 여러분들에게 필요하다. (물론, 나에게도 필요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그 일에 몰입하다보면 새로운 인생의 의미가 다가올 것이다.

셋째, 멋을 내라. 몇몇 어른들은 젊음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시기라고들 말씀하시지만, 천만의 말씀! 꾸미면 꾸밀수록 더 아름다운 것이 바로 젊음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돈을 처발라도 티가 나지 않는다. 용돈 벌어 멋있는 옷도 사입고 어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지 다양하게 시도해보라. 평생 가지고 갈 수 있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점이 바로 대학생 시절이다. 외적으로 멋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멋,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다양한 전시회화 문화행사에 참석해서 소양을 키우고 감성을 자극해라. 그 경험들이 멋진 밑거름이 되어 여러분들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넷째, 제대로 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라. 주위를 둘러보면 쉬는 시간 없이 공부와 일에 치어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막상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쉴지를 몰라 오히려 불안해 하거나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일들을 만들어내서 처리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 때부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조여가며 성장해온 이 시대의 ‘노동벌레’들이다. 아무도 이들에게 쉬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스스로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고 등떠밀면 뒷걸음 치게 되는 것이다. 일할 때 열심히 일했으면 쉴 때도 최선을 다해서 쉴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휴식 방법을 대학생 때 발견하지 못하면 평생을 노동의 노예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노동은 그 시작과 끝에 휴식이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잠을 자도 최선을 다해 잘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수다를 떨어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길 바란다.

다섯째, 다름을 구분할 수 있는 ‘느슨한’ 기준과 틀림을 판단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을 세워라.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문과/이과 구분 정책으로 대부분의 새내기들은 머리가 어느 정도 굳은 상태로 학교에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말랑말랑해지기 위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 있다. 사회에서 만나게 될 정말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기에 대학만큼 좋은 곳은 없다. 상대방과 내가 다른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가슴으로 안는 연습을 해라. 반대로 틀림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거절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을 세우는 것도 대학생 때 획득해야 할 중요한 자세다. 부정과 부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부조리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에 나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현실 세계의 진정한 ‘소인배’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다섯가지 이야기를 정리하고 보니 위안과 응원이라기보다는 꼰대의 잔소리가 된 것 같아 입에서 쑥냄새가 진동을 한다. 다만 바라는 단 한가지는 이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모든 이들의 행복이다. 이들이 현실에 부딪혀 무릎도 꿇어 볼 것이고 사랑에 눈물 짓기도 하겠지만, 인생은 참으로 살아볼만 한 것이라고,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 시대의 모든 새내기들, 파이팅!

그리고, 그 검은 외투 좀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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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한 단상

오늘 저녁, 대학원 동기 커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너무나 멋진 장소와 잘 어울리는 신랑과 신부, 감미로운 축가와 맛있는 음식 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예식이었다. 피로연이 진행되던 중 옆에 앉은 동생과 회사 다니랴, 아기 보랴 정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내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무리 지으며 이런 이야기를 내뱉었다. “못난 남편 만나서 고생하는거지, 머” 둘이서 겸연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데 옆에 앉아계시던 친한 교수님께서 나의 말을 듣고서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장난으로라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 는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셨다. 그 때에는 알겠다며 웃어 넘겼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 상황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글로서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컴퓨터를 켰다.

오늘 예식의 주례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3가지 이벤트 (탄생, 결혼, 죽음) 중에서 오직 결혼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결혼은 선택이다. 나는 누군가는 하지 않은 선택을 했고 그 결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새생명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었다. 물론 알차게 쓰던 자유시간이 많이 줄어들었고,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곱절 이상으로 늘어나 가끔씩은 뒷골이 땡기기도 하고, 딸아이를 재우느라 잠 못 이루는 밤도 늘었다. 휴일이 되면 연애 시절의 데이트는 이제 더이상 꿈도 꾸지 못하고 집안에서 하루 세끼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의 선택은 현실이 되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그렇게 결혼을 일찍 했어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즐겨하는 대답이 있다. “너무 좋아서요!” 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약간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아무도 그것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달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니깐 결혼한다는 것을. 다만 이 뒤집어진 세상에서  무언가가 약간 뒤틀려 있을 뿐이다. 조건, 조건, 조건.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머,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을 달지 않겠다. 쓰자면 밑도 끝도 없이 기분만 상할테니깐.

성경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믿음과 소망, 이 멋지고 순결한 단어들보다 흔하디 흔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부부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답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부부 간의 믿음? 이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리라 믿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기대는 높아지고 조그마한 실수 하나에도 서운한 마음이 눈 굴러가듯 불어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나를 책임지리라 믿기 시작하는 순간,  책임질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부부 간의 소망? 이 사람이 언젠가는 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변하지 않는 상대방의 모습에 실망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잘 대해줄 거라는 소망을 갖게되는 순간, 상대방의 작은 무관심에도 배신감을 느끼기 시 작할 것이다. 결국 서로가 만나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다. 다른 어떤 믿음이 필요하지 않으며 다른 어떤 소망도 가질 필요가 없다.

방금 전까지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설명할 수 없었던 불편함들이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한 저 어리석은 발언은 ‘선택’으로서의 결혼에 대한 의미를 뭉개버린 셈이며, 즉 아내의 선택을 그 근본 뿌리부터 뽑아 흔들어 버린 셈이다. 또 하나는 아내의 ‘사랑’을 ‘믿음’과 ‘소망’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자격지심으로 스스로를 믿음과 소망의 허울 좋은 철장에 가두어버린 셈이다. 나는,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글을 정리해보자. 결혼은 선택이고 그 선택은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 선택 후에 찾아오는 모든 문제들과 어려움들은 단 하나로 해결 가능한데 그것 또한 사랑이다. 따라서 결혼은 사랑의 결실임과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사랑으로의 진입을 안내하는 깃발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결혼하고 싶은 자?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은 자? 결혼하라!

칭찬의 기술, “SUPER” 칭찬법을 소개합니다.

지난밤, 칭찬의 기가 막힌 능력을 체험하고 난 뒤, 칭찬이 우리들의 삶에, 그리고 관계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칭찬 듣기를 밥 먹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것은 내가 그 누구보다 칭찬을 통한 ‘자기 확신’을 여러번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 보잘 것 없고 부족한 나이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의 진실된 격려와 응원으로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과연 어떻게 칭찬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물론, 모든 칭찬은 좋은 것이다. 비록 그것이 거짓이거나 과장일지라도!) 나의 작은 제안이 칭찬에 어려움을 느껴 괜히 툴툴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칭찬에 너무나 목말라 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소한 위로를 전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제안하는 칭찬의 기술은 “최고급의, 훌륭한”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영단어 SUPER로 요약된다. 즉, 최고의 (Super)의 칭찬은 구체적 (Specific)이어야 하고 개성적 (Unique)이어야 하며 지속적 (Persistent)이어야 하고 감성적 (Emotional)이어야 하며 즉시 (Real-time) 이루어져야 한다. 각각의 법칙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 칭찬은 구체적(Specific)이어야 한다.

칭찬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아마도 이 ‘구체성’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도 많은 ‘두리뭉실한’ 칭찬들을 접하게 되는데 칭찬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이 덜 동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두리뭉실함’ 때문이다. 이런 류의 칭찬은 칭찬을 하는 사람의 진심이 전달되기 어렵고, 몇몇 경우에는 진심이 호도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이 프리젠테이션을 멋지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프리젠테이션 좋았어!”, “프리젠테이션 너무 잘하더라!” 등의 칭찬을 선사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 칭찬을 들은 사람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가벼운 인사치레 정도로 넘기기가 쉽상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칭찬을 들었다면 어떨까? “오늘 프리젠테이션할 때 자신감 있는 태도가 너무 멋졌어!”, “오늘 복장과 프리젠테이션 구성이 너무 잘 매치된 것 같아!” 분명히 여러분들은 자신의 프리젠테이션을 다시 떠올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칭찬을 할 때는 어떤 특수한 행동이나 요소에 집중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칭찬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작은 행동이나 요소 하나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식이다. 여러분들의 칭찬을 듣는 그 누군가는 분명히 여러분의 진심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 칭찬을 마음 속에 간직할 것이고 더 멋진 삶을 살아낼 것이다.

2. 칭찬은 개성적(Unique)이어야 한다.

위의 “두리뭉실한” 칭찬과 더불어 가장 지양해야 할 칭찬은 바로 “뻔한” 칭찬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고 그 자신마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끄집어 내어 반복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칭찬을 하는 것이 칭찬을 하지 않은 것보다는 100배 이상으로 낫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나의 외모에 대해 칭찬 하는 것은 사실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살아오면서 외모에 대한 칭찬은 너무 많이 받아왔을 뿐더러 스스로도 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진담으로 받아들이실 뿐만 진담으로 받아들이시길…) 반면에,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의 장점을 누군가가 발견해서 칭찬해 준다면 어떨까? 또 상투적인 어구로 점철된 칭찬이 아니라 멋진 비유와 표현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칭찬이라면? 내가 받은 가장 개성적인 칭찬은 “밭에서 쑥~ 뽑아낸 싱싱한 무” 같다는 칭찬이다. (나는 지금 이 칭찬을 해 준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요새는 가끔씩 깍두기가 되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물론 스스로도 못 찾는 장점을 찾는다는 것이, 또 멋진 표현을 찾아낸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다 부담 가질 필요 절대 없다.  표현이 투박하고 서툴러도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깐.

3. 칭찬은 지속적(Persistent)이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칭찬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칭찬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확신’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밝힌대로 나 자신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받은 칭찬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 단기간 내에 형성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씨를 뿌린 다음, 바로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누군가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면, 여러분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그 사람의 장점을 키워주고 지켜봐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인생 자체를 책임 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 그  사람도 그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칭찬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회의에 빠진 그 누군가에게 그것을 극복하고 새 힘으로 힘차게 날아오르게 만드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4. 칭찬은 감성적(Emotional)이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을 크게 이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으로 구분해서 각 사람의 특성에 맞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들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나는, 칭찬의 경우에는 무조건 감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칭찬은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진심 어린 칭찬을 받았을 때 머리로 분석하지 않는다. (물론, 사회에서는 여러 타입의 정치적인 칭찬이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감동할 뿐이고 또 감동할 뿐이다. 따라서 칭찬을 할 때에는 자신의 감정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친구가 디자인한 포스터를 보고서 “포스터 진짜 멋지던데. 역시 실력 있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너가 디자인한 포스터를 보니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떨리고 흥분이 되더라.”라고 말하는 것이 칭찬을 받는 상대방에게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칭찬이라는 것은 칭찬을 주고 받는 두 사람간의 감성의 매개체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특히 남자의 경우, 이성으로부터 이런 감성적인 칭찬을 듣게 되면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게 되고 몹쓸 오해를 하기도 한다. (여성 분들을 이 부분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5. 칭찬은 즉시(Real-time) 이루어져야 한다.

“최고의” 칭찬법, 그 마지막 요소는 바로 즉시성이다. 이 요소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인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칭찬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별 생각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다 보면 임팩트가 큰 사건이 아닌 한 자신의 주위를 기울이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즉시성’은 가장 많은 관심과 주위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칭찬 받을 일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 곧바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를 원하지, 적당한 시간이 흘러 스스로 그 칭찬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늦게라도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좋은 “칭찬자”가 되고 싶다면 상대방의 좋은 부분을 발견했을 때, 즉시 그 부분을 칭찬할 수 있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필요가 있다. (신경을 곤두 세운다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들린다면, 까칠한 “이태리 타올안경”을 벗어버리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YES 안경”을 새롭게 장착하라는 충고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자신의 작은 기여에 상대방의 즉각적인 칭찬을 받은 사람은 그 순간을 영원히 강렬하게 기억할 것이다.

지금까지 “최고의” 칭찬을 할 수 있는 5가지 법칙에 대해서 소개를 했다.  그러나 이 5가지 법칙은 한낱 기교에 불과하다. 본문에서도 여러번 언급되었다시피,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그 칭찬 안에 담긴 진실된 마음이다. 이 세상에서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하며, 앞으로 남은 삶 동안 이 SUPER 칭찬법-5가지 칭찬의 법칙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우리, 칭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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