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실천하는 방법

동창 녀석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정기구독하게 된 경제 관련 매거진이 있습니다. 2주마다 집으로 날라오는데 한 켠에 쌓아두었다가 시간 날 때마타 비닐 포장을 뜯어 내용을 훑어보곤 합니다. 원래는 시덥잖은 비즈니스 유머를 소개하는 코너가 하나 있는데 이번호에는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실려 있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야기의 제목은 ‘법과 인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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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장이었던 피오렐로 라 과디아가 판사였던 시절 이야기.

한번은 빵 한 덩이를 훔치다가 걸려든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다. “왜 훔친 겁니까?”

“나이가 많다 보니 일거리를 구할 수가 있어야죠. 굶어죽게 생겼지 뭡니까. 그런 절망 상태에서 빵을 훔치게 됐던 겁니다.”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 처했을지라도 훔치는 행위는 죄가 됩니다. 법엔 차등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따라서 피고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판사가 관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했던 방청객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판사의 선고는 계속됐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치게 된 것은 비단 그의 책임만이 아닙니다. 이 도시의 시민 모두가 이 노인을 그토록 어려운 형편에 내버려둔 데 대해 함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 나온 모든 분에게 50센트씩의 벌금을, 그리고 나에겐 10달러의 벌금을 선고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그의 모자에 넣었다.

“집행관은 모든 이들로부터 벌금을 징수하세요.”

아무도 판사의 결정에 이의가 없었다. 거둔 돈은 모두 57.50달러, 그걸 노인에게 건네줬다. 벌금 10달러를 지불한 나머지 47.50달러를 가지고 노인은 감격해 눈물을 흘리면서 법정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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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두마리 토끼를 잡은 듯이 아주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공의와 사랑이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권리 포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나의 것을 포기함으로써 공의를 지켜내면서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이를 명쾌하게 실행하기 위한 지혜와 센스가 필요하겠죠. 어떤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쾌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하겠습니다. 공의를 지켜내면서 사랑을 베푸는 삶, 그리고 그것을 위한 지혜와 센스. 꼭 살고 싶고 꼭 가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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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대해 생각하다,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한가한 평일 밤 시간이 찾아오면 쌓아놨던 DVD 더미에서 그 날 기분에 따라 끌리는 녀석을 하나 고릅니다. 요새는 약간 마이너 기질이 근질거리는 탓인지, 주로 독립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의 DVD를 구입하고 또 감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본 두 개의 DVD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자세나 관점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가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기에 그에 대한 제 생각도 같이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아, 작품들의 제목을 이야기 안 했군요. 하나는 이스라엘 영화인 <The Band’s Visit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도리스 도리 감독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입니다.

두 작품의 시놉시스를 간단하게 말씀 드리자면 <어느 밴드의 조용한 방문>은 해체 위기에 놓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경찰 악단이 이스라엘의 한 지방 도시에 초청을 받아 떠났다가 목적지를 잘못 찾아 다른 작은 소도시에서 보내게 되는 하룻밤을 담은 작품이고,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완고하고 딱딱하던 남편이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아내가 원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 그 곳에서 겪는 일을 다룬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나 다른 두 작품에서 저는 어떠한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것일까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소통’이라는 단어입니다.

아직 인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에는 너무나 어린 저이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 인생이라는 것을, 삶이라는 것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의 삶이든, 언제의 삶이든, 어디에서의 삶이든 상관 없이  ‘모두 아프고,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두 작품에서도 각자의 상처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회피하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또 누군가는 다른 이가 그것을 해결해 주길 바랍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도망치기만 하고 동정 받기만을 원할 때 변하는 것은 없고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어 가죠. 이 때, 용감한 누군가가 나서게 됩니다. 자신의 문제와 상처를 뒤로 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삶에 들어서는 사람들입니다. 고인 물에 잔잔한 물결이 일기 시작하고 물살이 점점 강해지더니 어느 순간 일곱번째 파도가 밀려옵니다. 진정한 소통과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어느 밴드의 조용한 방문>의 할레드와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유를 보면서 이 용감한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스스로의 상처와 문제에 얽매여 있을 때, 자신의 상처와 문제는 살짝 덮어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할레드는 시몬의 고민을 해결해주었고 디나의 외로움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유는 루디가 죽은 아내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 용감한 사람들은 다른이들과 소통했고, 또 다른이들을 위로했습니다.

소통의 방식을 아름답게 보여준,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유는 루디에게 ‘소통’의 방식을 가르쳐줍니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중에서

이쯤되면 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소통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을 감싸 안고 있는가? 글쎄요, 자신있게 답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더 나아지리라는, 더 성숙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볼 따름입니다. 두 작품을 통 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신으로 이번 포스트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다들 소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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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유리한 두가지 연구 결과

요새는 출산이나 육아 관련된 기사에도 눈이 자주 가게 됩니다. 공부를 하는 입장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장 흥미로운 종류의 기사는 아무래도 실제 연구의 결과를 전해주는 기사들입니다. 이번 포스트에는 아내들에게 유리한 두 가지 연구결과를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하나는 임신한 여자들은 공간인지기억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고 또 다른 하나는 아이들은 아빠와 놀 때 더 재미있게 논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이제는 아내가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는다 하더라도 “임신해서 그래!” 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이고, “애들이 아빠랑 노는 걸 더 좋아한다잖아!” 라고 아이를 저에게 밀어넣을 수 있는 구석이 생긴 것이니 두 개의 연구 결과가 모두 아내에게 유리한 결과인 셈입니다.  아무래도 아내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 전까지는 따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저에게는 더 유익할 듯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한 번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연구 결과 중에서 제가 더 흥미로웠던 부분은 두 번째 것인데요, 아이들이 아빠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추측이 가관입니다. 아빠가 엄마에 비해서 자신들의 놀이에 간섭을 덜 하기 때문에 아빠와 노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연구진의 분석을 보면 실소를 머금게 됩니다. 이 시대의 아빠들은 얼마나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일까요?

생물학적/사회학적 이유로 남편들이 임신/출산/육아에 있어서 서브로 ‘취급’ 받거나 혹은 이와는 약간 다른 관점으로 아내들에게 그것들과 관련된 모든 ‘짐’이 부여되는 현상들을 바라보고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사회적 구조의 비인간성과 비교통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됩니다. (무엇보다 이 사회적 구조에서는 남편의 소외감과 아내의 부담감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듯 합니다.)

이 평행성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구조의 개선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아마도 역지사지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상대방이 왜 소외감을 느끼는지, 또 왜 이해할 수 없는 부담감을 사서 짊어지고 가는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물론 남편이 아내가, 아내가 남편이 되지 않는 한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요. 그래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머라도 하는 것이 상황을 개선시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저는 오늘도 뱃속에 아기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배를 불려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아내가 이런 저의 고운 마음을 이해한다면 뱃살 지적 안 하지 않을까, 라는 기분 좋은 희망도 한 번 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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