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다이어리 정리

기억을 위한 기록.

[연구]
새로운 변수나 새로운 관계는 하이라이트
해석이 어려울 때는 데이터를 더 깊이 들여다 볼 것

[마케팅] – Brand association
Category fit (functional)
Image fit (Needs satisfaction)

[연구] - Causality (인과관계)
1. Covariation
2. Temporal Sequence
3. (Not) Spurious

[마케팅] – 책
1. Market 3.0
2. Theory of shopping

[교육] – by Dan Pink (TED)
- 주도성, 자율성, 목적

[교육] – Important teaching points by Rothwell
1. Interaction – dialog. listen to students
2. Honesty – admit the mistakes
3. Sensitive – flexible in teaching plan & style

[스피치 특강] by 김은성 아나운서
1. 소통의 삼각형: 자존감, 공감적 이해력, Speech
2. 소통력: 공감력, 지식력, 언어구사력, 표현력, 상황동체력
3. Speech란 내가 가진 1) 콘텐츠를 잘 2) 표현해서 다른 사람을 3) 설득하는 작업
4. 3단계 듣기: 귀로 듣기(집중) – 몸으로 듣기 (Response, 내 말로 되묻기) – 마음으로 듣기 (인정)
5. 언행일치  = 이성 (Logos) + 감성 (Pathos) + 진정성 (Ethos)

[인문학 특강] 한반도의 역사 by 김석철 교수님
- 역사를 알려면 영웅과 천재를 알아야 한다.
-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은 한샘 시화 공장: 노동자들과 환경을 위한 건축 디자인
- 은행, 금융센터는 절대로 설계하지 않는다

2012년에는 더 많이 기록하고 더 많이 기억할 것.

Special Exhibition “RELOAD”

카이스트 경영대학 SUPEX 경영관 2층에는 넓은 공간이 하나 있는데,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 곳은 Research & Art gallery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곳에서는  예술과 경영, 또는 예술과 연구의 만남이라는 모토로 1년에 6~7회 정도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는데 오늘은 2011년의 첫 전시회인 홍남기 작가의 <RELOAD> 오프닝 행사가 있었다. 매번 오프닝 행사에는 작가를 직접 모셔서 작품에 대한 설명도 듣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진다.

50년 전, 칼라시니코프라는 구 소련의 한 병사가 만든 AK-47 자동소총을 모티브로 한 이 전시회는 영화의  전쟁신들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한 작품들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는 AK-47 자동소총에 대해 소개한 전시회 팜플렛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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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칼라시니코프라 불리는 구 소련의 한 병사가 나치즘에 대항하기 위해 자동소총 한 정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오늘에 와서 그 병사가 만들어 냈던 AK-47 자동소총은 전 세계에 1억 정이나 보급되었으며 그 덕택에 게릴라전이 지구상에 난무하게 되었다. 50년 전 소련정부가 AK-47 자동소총을 소련 군대의 표준 소총으로 채택한 순간부터 최전선 전쟁터는 물론 텔러리즘이 끊이지 않는 후방을 막론하고 적을 사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AK-47 자동소총이 마침내 모든 분쟁지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인기 있는 도구가 되었다. 영화 람보 시리즈는 AK-47돌격소총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영화로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고, ‘AK=나쁜놈’으로 공식되어있다. 흑인들이 겉옷을 풀어헤치고 한 손에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폐차 직전의 소형 트럭을 타도 비포장 도로를 활주하는 모습을 TV나 영화 속에서 수없이 봐왔다. 분쟁지역에서는 이 칼라시니코프 소총이 우리 돈으로 1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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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전시회 오프닝 행사 및 작품 사진들이다.

인사 말씀 중이신 라비 쿠마르 학장님

(왼편의 영상은 <람보>와 <못말리는 람보>의 전쟁신을 재 구성한 것)

작품 설명 중이신 홍남기 작가님

(뒤의 영상은 영화 <블랙호크다운>의 전쟁신을 드로잉으로 재구성한 것)

홍남기 작가에게 칼라니시코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레바논의 작가가 그에게 선물한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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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문화의 상품화와 물신화>, 21세기 새로운 문화 만들기

예술사회학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학문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19세기에 시작된 근대화를 통해서 각 예술 장르가 어떻게 상업화, 물신화 되어갔으며 그 결과로 나타난 대중문화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근대화가 예술 혹은 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는지에 묻는다면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찝찝함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 문화 향유계층이 귀족들에서 부르주아 계급으로, 또 일반 대중들로 확대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긍정적인 결과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고급)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그 자신의 계급이 구분되었던 ‘고전’ 사회에서는 일반 대중들이 예술에 접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혹 접근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교육 받지 못한 그들에게 오페라나 클래식 연주회 같은 ‘예술’은 무척이나 고리타분한 딴 세상 이야기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근대화로 인한 예술의 상품화와 물신화가 예술의 ‘질’을 떨어트렸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대중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히 ‘오락적’인 부분이야 있지만 ‘고상’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이미 17세기에 몽테뉴와 파스칼이 대중문화에 관한 현대의 논의를 거의 원형적으로 드러낸 바가 있다. 몽테뉴는 “대중예술은 오락으로서 긍정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그의 견해에 파스칼은 이러한 견해에 대해 “오락과 현실도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가피한 욕구이지만 인간만이 가진 보다 고상한 노력으로 그러한 욕구는 억제되어야 한다.” 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누구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내릴 수야 없지만 각 개인이 선호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몇 해 전부터, 고급예술의 대중화, 대중예술의 고급화라는 그럴듯한 구호가 문화계에 화두로 떠올랐다. 예를 들자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해설이 있는 클래식 음악회를 기획한다거나, 무언가 철학이 있고 작품성이 뛰어난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의 시도들을 이야기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들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것들이 긍정적인 대중문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의견을 뒷받침해주는 주장이 책에도 등장하는데 바로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이다. 그는 고급예술과 대중문화를 객관적으로 서로 연관되고 변증법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현상으로 다시 말해 자본주의 아래서 생산되는 미적 산물의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형태의 쌍둥이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책은 유의미하지만 약간은 싱거운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상품화된 미적 산물들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그 가능성을 발전시키는 것이라. 분명히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그 과정들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의 문화, 새로운 개념의 예술이 등장하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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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체험의 경제학>, 모든 비즈니스는 연극의 무대!

상품과 서비스를 넘어선 ‘체험의 경제’가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체험의 경제’에서는 모든 비즈니스가 연극의 무대다, 라는 컨셉으로 시작한 이 책은 ‘체험 경제’가 어떻게 구성되고 진행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환경 하에서 비즈니스와 연극이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가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전반부를 차지하는 체험 경제에 대한 부분에서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즈니스와 연극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적용들에 공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체험 경제의 다음 단계로서 저자가 언급한 트랜스포메이션 경제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문화산업의 미래와 이상향에 대해서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주었다.

저자가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경제 패러다임의 진화 방향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매슬로우(Maslow)의 인간 욕구 단계(Hierarchy of needs)였다. 범용품을 시작으로 제조품, 서비스, 체험, 그리고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가치의 발전 방향과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사이에서 유사점을 발견한 것이다.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Physiological & Safety)를 충족시키는 범용품과 제조품의 단계를 지나서 체험을 통해 어떤 애정과 소속감(Love&Belonging)을 느끼게 되고 궁극적으로 트랜스포메이션 경제에서는 자기 존중(Esteem)과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에 이를 수 있게 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유사점은 많은 의문들과 생각들을 이끌었는데 그것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체험 경제와 트랜스포메이션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문화산업에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사람(고객)들에게 긍정적인 변화(트랜스포메이션)를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그 답을 ‘지혜’에서 찾았는데 이것이 또다른 의문을 이끌어낸다. ‘지혜는 어떻게 습득(혹은 개발)시킬 수 있을 것인가?’ 존 댈라 코스타(John Dalla Costa)는 그의 책 『노동의 지혜(Working Wisdom)』에서 지혜야말로 체험의 성과라고 이야기 한다.

답은 점점 더 명확해진다. 문화를 그리고 문화산업을 공부하는 우리들(트랜스포메이션 유도자)은 사람(고객 혹은 열망자)들의 연기를 돕기 위해서, 즉 열망을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 지혜가 필요한 것이며 그 지혜는 다양한 체험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점점 더 명확해진다. General Specialist가 되기보다는 Special Generalist가 되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트랜스포메이션 경제를 맞이하는 나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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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멀고도 먼 어깨동무.

문화와 경제를 이야기할 때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경제학자 중의 하나가 베블런이 아닌가 싶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내세웠던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의 개념은 지금의 문화산업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큰 관점들 중의 하나이다. 유한계급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는 그의 주장은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살펴보았을 때에도 일견 타당해 보인다.

여기 부르디외도 구별짓기(Distinction, 디스뗑끄시옹)라는 다른 이름으로 인간들의 과시적 행위를 이야기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구별짓기란 바로 ‘남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두드러지게 하는 것’ 으로 ‘계급분화와 계급구조를 유지하는 기본원리 중의 하나‘ 이다. 부르디외는 경제적, 사회적 계급을 논하면서 결국은 그 계급별로 가지는 학력자본이나 문화자본, 사회자본 등을 통해 새로운 잣대의 계급구조로 다시 재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그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정통 문화를 몸에 익히거나 주입 받으면서 획득한 성향을 바탕으로 하는 무의식적 학습을 통해 ‘구별된’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상위 계급들은 반복되는 교육과 학습을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책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흔히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그것을 향유하는 데에 어느 정도의 교육과 학습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이야기한다. 어떠한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것은 고급예술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대중예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급예술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비롯한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또 이러한 부모들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계급을 물려받게 된다. 이러한 구조가 반복될수록 경제적, 문화적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것이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을 선택의 문제로 안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레벨의 문제이다. 고급예술이 더 좋고 더 우월하다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클래식이나 오페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예술들은 그들의 선택 가능한 대안들의 목록에 없다. 선택의 문제는 수준이 동일한 선상에서야 겨우 얼굴을 내밀 수 있다. 결국 사회적 계급의 대물림이 이러한 문제들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취향을 가지고 똑같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그것이 ‘고급’예술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수준의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제공해 주기 위한 노력들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대중예술‘만’ 아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고급예술‘만’ 아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유익하다. 다른 것을 알고 경험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곳을 더욱더 ‘두터운’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데에 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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