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다이어리 정리

기억을 위한 기록.

[연구]
새로운 변수나 새로운 관계는 하이라이트
해석이 어려울 때는 데이터를 더 깊이 들여다 볼 것

[마케팅] – Brand association
Category fit (functional)
Image fit (Needs satisfaction)

[연구] - Causality (인과관계)
1. Covariation
2. Temporal Sequence
3. (Not) Spurious

[마케팅] – 책
1. Market 3.0
2. Theory of shopping

[교육] – by Dan Pink (TED)
- 주도성, 자율성, 목적

[교육] – Important teaching points by Rothwell
1. Interaction – dialog. listen to students
2. Honesty – admit the mistakes
3. Sensitive – flexible in teaching plan & style

[스피치 특강] by 김은성 아나운서
1. 소통의 삼각형: 자존감, 공감적 이해력, Speech
2. 소통력: 공감력, 지식력, 언어구사력, 표현력, 상황동체력
3. Speech란 내가 가진 1) 콘텐츠를 잘 2) 표현해서 다른 사람을 3) 설득하는 작업
4. 3단계 듣기: 귀로 듣기(집중) – 몸으로 듣기 (Response, 내 말로 되묻기) – 마음으로 듣기 (인정)
5. 언행일치  = 이성 (Logos) + 감성 (Pathos) + 진정성 (Ethos)

[인문학 특강] 한반도의 역사 by 김석철 교수님
- 역사를 알려면 영웅과 천재를 알아야 한다.
-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은 한샘 시화 공장: 노동자들과 환경을 위한 건축 디자인
- 은행, 금융센터는 절대로 설계하지 않는다

2012년에는 더 많이 기록하고 더 많이 기억할 것.

이성의 외모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

외모는 파트너 선택의 초기 단계에 있어서 최상위 기준들 중의 하나이다. (사실, ‘들 중의 하나’를 빼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이 Barrier를 쉽게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저 사람은 다 좋은데 얼굴이 너무 커!” (내 이야기 아님)
“저 남자는 왜 평소에도 쪼그려 뛰기를 하는거지?”
“저 여자는 코로 숨을 쉴 수는 있는거야?”
“저 사람은 눈을 왜 집에다 놓고 온거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우리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우리 밖으로 지나가는 이성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평생 그 우리에 갖혀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옆에 동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이런 접근 방식을 제안해 본다.

이성의 외모를 판단하는 제 1의 기준!

내가 상대방에게 이쁘다(혹은 잘생겼다)고 이야기 했을 때, 진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결국 중요한 것은 자존감과 자신감이다.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고 콤플렉스를 이겨낸 사람이야 말로 여러분들이 매달려야 할 진정한 미남, 미녀인 것을 기억하라!

권위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얼마 전 문득 권위라는 단어를 머릿 속에 떠올려 보았다.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고 신기하게도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내 생각들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권위는 도구가 아니라 결과다!

내 의지로, 가끔씩은 내 의지와는 별개로 내 인생 대부분(20년이다!)을 학교에서 보낸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스승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국민학교에 갓 입학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바지에 직접 볼 일을 보고만 나를 손수 씻겨주셨던 선생님도 생각나고, 국민학교 운동회 리허설 때 친구랑 장난을 치던 나의 뺨을 때려서 입술이 터지게 한 선생님도 기억난다. 왜소했던 형의 교복 바지를 물려입은 바람에 의도치 않게 바지통을 줄인 비행학생으로 오인되어 조인트를 까이기도 했고 (그 전에 입던 바지는 손수 줄이기도 했지만…), 교실 뒤에서 맨날 자던 애가 성적이 잘 나오니 컨닝을 의심 받았던 기억도 난다. 백일장을 준비하던 나에게 글쓰기는 결국 ‘구라 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문학 선생님도 생각 나고, 수업 중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는데 뒤따라 들어오신 선생님이 나의 흡연을 의심하는 바람에 문 하나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도 난다. (난 순수하게 볼 일을 보는 중이었다!) 대학에서도, 또 대학원에서도 다양한 교수님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특별히 한 학년에 400명이 넘어갔던 학부 때와 달리 교수님 한 분, 한 분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대학원에서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운 좋게도, (현재를 포함해서) 좋은 지도교수님들을 모실 수 있었고 실력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지혜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은, 이해하기 어렵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스승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 나는 그 분들에게서 심한 불쾌감을 느끼는데 그 이유를 굳이 꼽자면 그 분들의 ‘무례함’ 때문이랄까?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들이다. 말로 할 수 있는 상황인데 굳이 매를 들거나 자신의 신체부위를 활용하여 타격을 가했던 경우. 자신의 손을 리모콘으로 오해하는 경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강요하는 경우, 스스로가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정도로 비하하고 깔아뭉개는 경우 등.

결국 이런 분들에게 권위라는 것은 도구에 다름 없다.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 시키고 다른 사람들, 특별히 자신에 비해 약자인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도록 허하는 자유이용권인 셈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 자유이용권의 기한이 지나가 버리면 남는 것은 껍데기 뿐이다. 스스로 취한 권위라는 것은 결국 썩어지게 마련이니깐. 그리고 쌓여 있던 욕과 원망으로 그 속을 채우게 된다. 비단 학교에서 뿐만이 아니다. 스스로 발급한 자유이용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농락하는 분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냄새가 진동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운을 띄우는 것도 결국은 값싼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반면에, 아이러니칼하게도 내가 진심으로 권위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언제나 겸손하시고 허물 없이 사람들과 마주하시는 분들이다. 얼굴에 완벽하게 정착한 미소, 적당히 이완된 어깨선,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는 언행, 한껏 드러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지식과 지혜의 깊이 등이 이런 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 요소라고나 할까? 이런 분들과 마주하게 되면  내 마음 속 깊이 경외의 마음이 피어오르게 되고, 그 경외의 마음이 그 분들에게 닿으면 권위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스스로 취한 권위가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혹은 공동체로부터 부여받는 권위인 셈이다. 이러한 권위는 지고지순한 과정을 거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뿌리 깊고 견고해서 쉽게 흔들리는 법이 없고 사라지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한 인생의 결과물로서의 권위인 것이다.

권위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그 권위가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는 쓰레기와 같은 자들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라면 쓰레기통으부터 나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진정한 권위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그 곳은 겸손하게 또 허물 없이 한 길을 걸어온 그 누군가의 인생 끝자락 어디쯤이 아닐까?

사소해지기

경영 대학원에 다니다 보니 대부분의 수업에 팀프로젝트는 기본 양념으로 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생으로서, 또 연구자로서 수업에서 다른 동료들의 연구 주제나 프로젝트 주제 발표를 들을 때, 가장 가슴이 갑갑해 올 때는 그들이 너무나도 원대한 비전을 선포할 때다. 이러한 갑갑함은 논문 주제 발표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통쾌해하는 교수님의 피드백은 “자네, 그거 하려면 평생을 바쳐서 해도 모질라.” 혹은 “자네가 학교를 오래 다니고 싶으면 해도 좋네.”와 같은 종류의 것들이다. 사실 이 부분은 모든 대학원생들이 마주하게 되는 가장 큰 딜레마이다. 연구의 범위를 좁히자니 내가 왠지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또 연구의 범위를 확대하자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잡히는 엄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오늘 석사 신입생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졸업논문을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난 석사 학위 논문을 쓴 사람도 아니고, 연구를 많이 해 본 사람도 아니지만, 짧은 연구 인생을 통해 본능적으로 깨달은 단 한가지 사실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연구를 할 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최선의 마음가짐은 바로 쪼잔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사소해지는 것’ 이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오는 한 캐릭터의 대사처럼 ‘한 놈만 죽도록 패는 것’이다. 멍한 표정으로 내 열변에 귀기울이던 신입생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사소해지기로 굳게 마음 먹은 듯 보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도 이런 ‘사소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우리들 살아갈 때도 서로에게 ‘그럴듯한 것’만 주려고 하지. 사실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감동은 ‘그럴듯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진심 없이 전달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보다는 향기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꽃밭에서 전해주는 꽃반지가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물론 꽃밭에서 전해주는 진심의 다이아몬드라면 더 좋겠지?) 사소해지는 것. 그 사람의 어깨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일.  길거리 가판에서 고민고민해 선택한 아름다운 머리핀을 선물하는 일. 부모님들에게 하루에 한번쯤은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 문자를 보내드리는 일. 이러한 사소함들이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날카로운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사소해지기.

화창한 봄날 검은 외투를 입은 그대에게

우리 학교는 봄학기 개강이 일러 이미 한창 학기가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학기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방학의 끝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이들에게는 손에 땀이 맺힐 정도로 긴장되고 흥분되는 새로운 시작일테다. 바로, 대학 새내기들에 대한 이야기다.

점심을 햄버거로 때울 요량으로 경희대 앞에 있는 버거킹으로 향했다.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앞에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별 다른 생각없이 빈틈을 헤집고 들어가 내가 버거킹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베이컨더블치즈버거 세트를 시키고 빈자리에 앉았다. 원래의 습관대로 창밖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라, 그런데 창밖에도 검은색 외투를 입은 무리들이 이곳저곳에 출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우리나라가 국상이라도 치르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몹쓸, 그러나 약간은 희망적인 상상을 하며 슬며시 웃었다. 카운터에서 내 햄버거를 받아들고 다시 자리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검은 외투의 무리들은 바로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 새내기들이었다. 그렇게 확신을 하고 나니 왠지 씁쓸했다.

휘향찬란한 색감으로 표현해도 모자랄 젊음을 지니고 있을 그들이 검은색 외투라니! 물론 입은 옷이 그들의 전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를 설명할 수는 있으리라. 검은색 외투의 무리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꼭 우리나라 12년 교육의 획일화된 결과물인 것 같아 햄버거 맛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 검은색 외투의 무리들에게 우리 대학들은, 우리 사회는 장례식장 이상의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 화창한 봄날에 검은 외투를 입은 그네들에게 조심스럽게 몇가지 위안과 응원을 전하고 싶다.

첫째, 비전 ‘따위는’ 가지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지금 비전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꿈을 강요 당하고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이 패배자처럼 인식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 분위기에 절대로 휩쓸리지 말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선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낮은 자리에서라도 주위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삶의 방향으로 설정해라. 비전은 행복 다음에 올 때 더 아름답다.

둘째, 주말 정도는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보내라. 처음 주어진 자유에 자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해야 되는 일이 있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주중을 해야 되는 일로 보냈다면 주말 정도는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도록 해라. 이를 주말로 한정 짓는 것은 주어진 자유에 대해서 최소한의 책임감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책임감과 중압감에 억눌려 주말에도 공부와 일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산책을 하든, 운동을 하든, 독서를 하든, 영화를 보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날이 여러분들에게 필요하다. (물론, 나에게도 필요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그 일에 몰입하다보면 새로운 인생의 의미가 다가올 것이다.

셋째, 멋을 내라. 몇몇 어른들은 젊음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시기라고들 말씀하시지만, 천만의 말씀! 꾸미면 꾸밀수록 더 아름다운 것이 바로 젊음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돈을 처발라도 티가 나지 않는다. 용돈 벌어 멋있는 옷도 사입고 어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지 다양하게 시도해보라. 평생 가지고 갈 수 있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점이 바로 대학생 시절이다. 외적으로 멋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멋,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다양한 전시회화 문화행사에 참석해서 소양을 키우고 감성을 자극해라. 그 경험들이 멋진 밑거름이 되어 여러분들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넷째, 제대로 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라. 주위를 둘러보면 쉬는 시간 없이 공부와 일에 치어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막상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쉴지를 몰라 오히려 불안해 하거나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일들을 만들어내서 처리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 때부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조여가며 성장해온 이 시대의 ‘노동벌레’들이다. 아무도 이들에게 쉬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스스로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고 등떠밀면 뒷걸음 치게 되는 것이다. 일할 때 열심히 일했으면 쉴 때도 최선을 다해서 쉴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휴식 방법을 대학생 때 발견하지 못하면 평생을 노동의 노예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노동은 그 시작과 끝에 휴식이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잠을 자도 최선을 다해 잘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수다를 떨어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길 바란다.

다섯째, 다름을 구분할 수 있는 ‘느슨한’ 기준과 틀림을 판단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을 세워라.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문과/이과 구분 정책으로 대부분의 새내기들은 머리가 어느 정도 굳은 상태로 학교에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말랑말랑해지기 위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 있다. 사회에서 만나게 될 정말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기에 대학만큼 좋은 곳은 없다. 상대방과 내가 다른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가슴으로 안는 연습을 해라. 반대로 틀림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거절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을 세우는 것도 대학생 때 획득해야 할 중요한 자세다. 부정과 부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부조리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에 나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현실 세계의 진정한 ‘소인배’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다섯가지 이야기를 정리하고 보니 위안과 응원이라기보다는 꼰대의 잔소리가 된 것 같아 입에서 쑥냄새가 진동을 한다. 다만 바라는 단 한가지는 이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모든 이들의 행복이다. 이들이 현실에 부딪혀 무릎도 꿇어 볼 것이고 사랑에 눈물 짓기도 하겠지만, 인생은 참으로 살아볼만 한 것이라고,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 시대의 모든 새내기들, 파이팅!

그리고, 그 검은 외투 좀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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